읽고 쓰는 일

독자가 궁금하지 않은 건 굳이 - 옮긴이 주

무지개항아리 2025. 4. 18. 18:54

독자가 궁금하지 않은 건 굳이 – 옮긴이 주

번역서를 편집하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이건 설명해줘야 하나?”
“아니면 그냥 지나가도 될까?”

옮긴이 주, 혹은 역자의 설명은
독자를 배려하는 장치이기도 하고,
동시에 텍스트의 몰입을 깨는 위험 요소이기도 하다.
설명을 더하는 게 무조건 친절한 건 아니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정직한 전달이 된다.


장르에 따라 달라지는 옮긴이 주의 역할

옮긴이 주가 필요한가 아닌가는
단지 정보량의 문제보다 **‘장르적 위치’**에서 먼저 따져야 한다.
예를 들어 정보 중심의 교양서, 자기계발서, 논픽션에서는
옮긴이 주가 오히려 이해와 신뢰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개념이나 제도를 정확히 설명해주는 것은
해당 분야의 독자들이 기대하는 기본적인 ‘정보 설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 작품, 특히 서사와 감정선이 중요한 텍스트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서의 흐름 안에 갑자기 삽입되는 옮긴이 주는
그 자체로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
설명이 아니라 해석처럼 느껴질 때, 독자는 그 문장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꼭 넣어야 할까?

예시: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 ‘나베(전골요리)’ 같은 음식이나
‘군마현(간토 지방에 위치한 내륙현)’ 같은 지명을
일일이 설명하는 옮긴이 주가 붙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장면 안에 이미
쌀을 뭉치는 손동작냄비에 끓이는 동작눈에 낯선 지명 같은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정서를 전달하고 있다면
독자는 굳이 그걸 ‘정보로’ 확인하지 않아도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때로는 이런 주석들이
문장의 여백이나 인물의 낯섦을 스스로 해명해버려서,
작가가 남긴 ‘불투명함’을 걷어내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숫자, 날짜, 제도 설명… 어디까지 할까?

“7만 엔으로 중고차를 샀다”는 문장에
“약 70만 원”이라는 환율 환산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7만 엔’이라는 표현 자체가
인물의 경제적 조건과 당시 상황의 분위기를 함께 말해줄 수 있다면,
굳이 환율까지 알려주는 건 몰입을 끊는 계산이 될 수 있다.
또한, 본문에 **“4월 1일, 입학식이 열렸다”**는 문장이 이미 있다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새학기’ ‘새출발’ ‘봄’**이라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그 위에 “일본은 4월에 학기가 시작됩니다” 같은 설명을 덧붙이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굳이 말함으로써, 독자의 감각을 방해하는 일이 된다.
그럴 때는 지우는 것이 더 정중한 전달일 수 있다.
독자가 궁금하지 않은 건, 굳이 안 알려준다.
그건 정보가 아니라, 신뢰에 대한 태도다.


지금은 로컬라이징보다 ‘정서 조율’이 중요한 시대

예전에는 “독자가 모를 수 있다”는 이유로
설명을 붙이거나, 문화를 바꿔서 번역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검색은 습관이고, 낯섦은 궁금함으로 연결된다.
정보는 이미 다 열려 있다.
독자는 알고 싶으면 스스로 찾아가고,
그보다 먼저 텍스트 안에서 느끼고 싶어 한다.
생소한 어휘, 행사 이름, 음식 이름, 지명, 연예인 이름까지
궁금한 사람은 다 검색해 본다.
그렇기에 텍스트가 먼저 설명하는 대신,
‘알아도 좋고, 몰라도 괜찮은’ 상태로 남겨두는 편집이 더 힘 있다.


핵심은 이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다른 문화권의 정보를 어디까지 설명적으로 넣어야 하는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그 정보가 인물의 정서, 독자의 감각, 문장의 리듬을 어떻게 흔드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설명은 이해를 돕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몰입을 방해하는 해석이 되기도 한다.
 
📍이 부분은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다음번엔 영미권 번역서에서의 역자주와 편집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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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는 것이 더 정직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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