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일의 시간

개복숭아와 바나나

무지개항아리 2025. 4. 3. 10:25

바나나는 껍질을 벗기기만 하면 된다

나는 과일을 좋아한다.
사과, 딸기, 복숭아…
그중에서도 복숭아를 가장 좋아했다.

어릴 때는 과일이 늘 집 안 어딘가에 있었고,
누군가는 그것을 씻고, 깎고, 먹기 좋게 건네주었다.
그 손길 덕분에 나는 늘 맛있는 과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개복숭아는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할머니가 불을 끄고 먹으면 더 맛있다고 했던 과일.
그 시절 이후로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나중에 알았다.
개복숭아는 벌레가 많아
어린 내가 싫어할까 봐
할머니가 일부러 불을 끄고 먹여주신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복숭아 하나를 먹는 데도
누군가의 손길과 배려가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지 알겠다.

 

 

혼자 살다 보니, 과일 하나 챙겨 먹는 것도 번거롭다.
씻고 깎고 정리하는 게 일처럼 느껴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사지 않게 된다.

그래서 요즘 내가 먹는 유일한 과일은 바나나다.
껍질만 벗기면 된다.
그게 전부다.

그냥 손에 들고, 커피 한 잔 곁들여
책상 앞에 먹는다.

그런데 바나나가 멸종 위기란다.
언제까지 이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바나나 멸종 위기는 'TR4'라는 곰팡이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쉽게 먹는 바나나는 '카벤디시'라는 단일 품종인데,  
이 품종이 거의 전 세계 바나나 시장을 점유하고 있어서  
병에 한번 취약해지면 모두 영향을 받는다고.

할머니와 먹던개복숭아처럼,  
지금은 흔하지 않은 바나나도  
언젠가 '추억의 과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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