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티시킨
아이가 태어났지만 이름도 없이 떠났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어떤 상처도 아픈 곳도 없었는데,
모두가 잠든 그날 조용히 실크 왕국을 떠났다.
실크 왕국에서는 태어난 지 1년째 되는 생일날 이름을 짓는 전통이 있다.
그래서, 티시킨은 이름을 받지 못했다.
그리핀은 자신이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 아기가 떠난 것 같다고 믿었다. 동생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죄책감은 조용한 소년 안에 오래 남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동생에게 자신만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내가 그 애 얼굴을 내려다봤을 때 나뭇잎들이 그런 소리를 냈거든.”
“정말 예쁜 이름이다. 티시킨, 티시킨.”
그날, 그리핀 안에서 아주 작고 조용했던 용기의 불꽃이 살아났다.
나는 이 용기의 불꽃이 흔들리는 문장을 번역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이야기는 호주 아동문학 작가 글렌다 밀러드(Glenda Millard)의 작품 『내 동생, 티시킨The Naming of Tishkin Silk』에 나오는 장면이다. 그녀는 상실, 회복, 우정, 존재의 의미 같은 깊은 감정을 섬세하고 시적인 문장으로 건네는 작가다.
그렌다 밀러드는 "소음 많은 세상에서 조용히 울리는 종소리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 동생, 티시킨』은 그 말이 가장 잘 구현된 작품 중 하나다.
이 책은 수 많은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고, 2004년 CBCA 올해의 책을 수상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서울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 권장 도서로 선정된 이력도 있다. 하지만 그리 잘 알려진 작품은 아니다.
아마 이 책이 담고 있는 감정이 너무 조용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하지 못한 슬픔, 조용한 죄책감,
아주 작은 용기와 회복의 서사는 지금 다시 꺼내 읽혀야 할 이야기다.
이토록 조용하고 단단한 이야기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건, 부족한 나에게 감히 깊은 영광이었다.
이름을 붙여주지 못한 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기억하는 방식.
『내 동생, 티시킨』은 잃어버린 것과 함께 살아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고,
지금도 조용히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는 책이다.
#다음엔, 실크 왕국에 나타난 또 한 명의 아이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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